알테 피나코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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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테 피나코테크는 독일 뮌헨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비텔스바흐 가문의 미술품 수집에서 시작되어 14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럽 회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6세기 빌헬름 4세의 역사화 의뢰를 시작으로, 막시밀리안 1세는 뒤러의 작품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은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그림을 수집했다. 루트비히 1세는 초기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르네상스 걸작들을 수집하며 컬렉션을 확장했다. 1836년 개관한 알테 피나코테크는 2차 세계 대전 중 피해를 입었지만 재건되었으며, 초기 네덜란드 회화, 독일 회화, 플랑드르 회화, 이탈리아 회화, 프랑스 회화, 스페인 회화 등 다양한 회화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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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 피나코테크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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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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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쿤스트아레알, 뮌헨, 독일 |
개관 | 1836년 |
유형 | 미술관 |
소속 | 바이에른 주립 회화 소장품 |
소장품 | 올드 마스터 |
대중교통 | 27번 트램 (Pinakotheken 역) 지하철 U2 (Königsplatz 역) |
웹사이트 | 알테 피나코테크 공식 웹사이트 |
명칭 | |
독일어 | Alte Pinakothek () |
한국어 | 알테 피나코테크 |
역사 | |
설립 | 1836년 |
관련 기관 | 바이에른 주립 회화 소장품 |
위치 정보 | |
2. 역사
비텔스바흐 가문의 미술품 수집은 16세기 전반 빌헬름 4세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알렉산더의 이수스 전투'' 등을 그리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역대 군주들의 수집이 더해져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가 되었다.
1777년 바이에른과 팔츠 선제후령이 재통합된 후, 만하임, 뒤셀도르프, 츠바이브뤼켄의 미술관들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전쟁 중 소장품을 보호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뮌헨으로 옮겨졌다. 1800년 나폴레옹 1세의 침략군이 ''알렉산더의 이수스 전투''를 포함한 72점의 그림을 파리로 가져갔으나[8], 대부분 반환되지 않았다.
세속화로 교회와 옛 수도원의 많은 그림들이 국가 소유가 되었다. 루트비히 1세는 특히 초기 독일과 초기 네덜란드 그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걸작들을 수집했다. 19세기 루트비히 1세는 미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레오 폰 클렌체에게 설계를 맡겨 1836년에 개관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되어 1957년에 재개관하였다.
1988년 4월에는 한스-요아힘 볼만이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3점에 산을 뿌려 3500만유로의 피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10] 2014년 8월 5일, 박물관은 야코프 오히터벨트의 ''레몬 조각'' 반환 요청을 거부했는데, 이는 나치 박해로 인해 불법 획득했다는 주장에 대한 조사 결과, 합법적인 구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12]
2. 1. 컬렉션의 형성 (16세기 - 18세기)
비텔스바흐 가문의 소장품은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4세(1508-1550)가 당대 주요 화가들에게 여러 역사화를 제작하도록 의뢰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여기에는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알렉산더의 이수스 전투''도 포함된다.[6] 선제후 막시밀리안 1세(1597-1651)는 1616년 페터 파울 루벤스에게 사냥 그림 네 점을 의뢰했고[6] 특히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을 포함한 많은 그림들을 수집했다. 그는 1627년 누른베르크 시의회에 대한 압력으로 ''네 명의 사도''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30년 전쟁 중 뮌헨 점령 기간에 21점의 그림이 압수되어 스웨덴으로 옮겨졌다. 막시밀리안의 손자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1679-1726)은 스페인 네덜란드 총독이었을 때 많은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그림을 구입했다. 예를 들어, 1698년 앤트워프에서 Gisbert van Colen으로부터 페터 파울 루벤스의 그림 12점과 반다이크의 그림 13점을 구입했는데, 루벤스의 그림은 화가의 개인 소장품이었기 때문에 판매용이 아니었다. 막스 에마누엘의 후계자들은 예산 부족으로[7] 그림 구입을 대부분 중단했다.막스 에마누엘의 사촌 요한 빌헬름(1690-1716)도 네덜란드 그림을 수집했다. 그는 페터 파울 루벤스에게 ''거대한 최후의 심판''을 의뢰했고, 그의 아내의 지참금으로 라파엘의 ''카니지아니 성가정''을 받았다. 카를 테오도르(1742-1799) 또한 네덜란드 그림을 매우 좋아했으며, 다른 그림들 중에서 렘브란트의 ''성가정''을 소장했다. 18세기 후반에는 많은 그림들이 슐라이스하임 궁전에 전시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1777년 바이에른과 팔츠 선제후령이 재통합된 후, 만하임, 뒤셀도르프, 츠바이브뤼켄의 미술관들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전쟁 중 소장품을 보호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뮌헨으로 옮겨졌다.
2. 2. 루트비히 1세와 알테 피나코테크 건립 (19세기)

바이에른의 국왕 루트비히 1세는 1826년 비텔스바흐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건물 건설을 레오 폰 클렌체에게 명령했다.[2] 알테 피나코테크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었으며, 전시실에 채광창(skylight)을 편리하게 설치하여 구조적, 개념적으로도 앞서 있었다.[4] 피나코테크의 신르네상스 양식 외관은 19세기 초 일반적이었던 성과 같은 박물관 건물 유형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는 박물관 건물의 기능과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당시 매우 현대적이었던 이 건물은 1836년 개관 이후 독일과 유럽의 박물관 건축의 모범이 되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4], 로마, 브뤼셀, 카셀의 미술관 등 새로운 미술관 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이 박물관 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재건되어 1957년 6월 7일 테오도어 호이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중에게 재개관했다.[5] 에른스트 부크너 관장은 재건 프로젝트를 감독하여 건물이 원래 건축 양식을 유지하도록 했다. 전쟁 전 화려했던 내부, 특히 윗층 남쪽 외벽에 있는 큰 로지아는 복원되지 않았다. 2008년 알테 피나코테크 윗층 방들의 벽에는 리옹산 직조 염색 실크로 새로운 벽 장식이 만들어졌다. 녹색과 붉은색의 새로운 색 구성표는 알테 피나코테크 건립 당시부터 20세기까지 주된 디자인을 따른 것이다. 루트비히 1세 국왕과 그의 건축가 레오 폰 클렌체에게 붉은색과 녹색을 번갈아 사용하는 벽 장식은 16세기 후반 유럽 주요 미술관(피렌체, 런던, 마드리드,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빈)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했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2. 3. 20세기 이후
1988년 4월, 한스-요아힘 볼만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리스도를 위한 애가'', ''파움가르트너 제단화'',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에 산을 뿌려[10] 약 3500만유로의 피해를 입히는 파괴 행위를 저질렀다. 1990년 디릭 바우츠의 ''에케 아그누스 데이''가 소장품으로 추가되었다.[11]2014년 8월 5일, 박물관은 은행가 카를 하겐의 후손이 나치 박해로 인해 불법적으로 획득했다는 이유로 야코프 오히터벨트의 ''레몬 조각'' 반환 요청을 거부했다. 박물관 조사 결과, 이 그림은 당시 공정한 가격으로 합법적으로 구입되었고 하겐 가문의 이해관계는 그림에 대한 담보에만 국한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2]
3. 주요 소장품
알테 피나코테크는 13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유럽 회화 수천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초기 이탈리아, 구독일, 구네덜란드 및 플랑드르 회화 컬렉션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13] 800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슐라이스하임 궁전과 노이부르크 궁전 등 관련 미술관에서도 거장들의 작품을 추가로 전시하고 있다.[13]
- 독일 회화 (14세기~17세기): 슈테판 로흐너, 알브레히트 뒤러, 루카스 크라나흐 등 독일 거장들의 작품을 폭넓게 소장하고 있다.
- 초기 네덜란드 회화 (15세기~16세기): 로지에르 반 데어 바이덴, 한스 멤링 등 초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주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네덜란드 회화 (17세기~18세기): 렘브란트 판 레인, 프란스 할스 등 네덜란드 황금기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플랑드르 회화 (16세기~18세기): 피터 폴 루벤스의 작품 72점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루벤스 상설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 이탈리아 회화 (13세기~18세기): 조토 디 본도네의 ''최후의 만찬''을 비롯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회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프랑스 회화 (16세기~18세기): 클로드 로랭, 니콜라 푸생, 프랑수아 부셰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규모는 작은 편이다.
- 스페인 회화 (16세기~18세기):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릴로 등 스페인 황금기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규모는 가장 작다.
분류:알테 피나코테크 소장품 문서도 참고.

3. 1. 독일 회화 (14세기 - 17세기)
알테 피나코테크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독일 거장들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슈테판 로흐너 (Stefan Lochner) - ''성모 마리아의 아기 예수 경배(The Nativity)''
- 미하엘 파허 (Michael Pacher) - ''교부들의 제단화(Altarpiece of the Church Fathers)''
- 마르틴 숀가우어 (Martin Schongauer) - ''성가정(Holy Family)''
-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 ''사도 4인 (The Four Apostles)'', ''파움가르트너 제단화 (Paumgartner Altar)'', ''자화상 (Self-Portrait)''
- 한스 발둥 그린 (Hans Baldung Grien) - ''바덴 변경백 크리스토프 (Margrave Christoph of Baden)''
-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Albrecht Altdorfer) - ''이스수스 전투 (The Battle of Issus)''
- 루카스 크라나흐 (Lucas Cranach the Elder) - ''십자가 아래 애도(Lamentation Beneath the Cross)''
-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the Elder) - 성 세바스티안 제단화; 중앙 패널: ''성 세바스티안 순교(Martyrdom of St. Sebastian)''
-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Matthias Grünewald) - ''성 에라스무스와 성 모리스 (SS. Erasmus und Maurice)''
- 한스 폰 아헨 (Hans von Aachen) - ''진리의 승리(The Triumph of Truth)''
- 아담 엘스하이머 (Adam Elsheimer) - ''애굽으로의 도피 (The Flight into Egypt)''
- 요한 리스 (Johann Liss) - ''클레오파트라의 죽음(Death of Cleopatra)''

3. 2. 초기 네덜란드 회화 (15세기 - 16세기)
알테 피나코테크는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컬렉션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로지에르 반 데어 바이덴의 ''성 콜룸바 제단화'', 디에릭 바우츠의 ''보라, 어린양'', 루카스 반 레이덴의 ''마리아 막달레나와 기증자와 함께 있는 성모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최후의 심판 (보스 삼폭화 단편)'', 한스 멤링의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기쁨'', 얀 고사에르트의 ''다나에'' 등이 있다.[13]3. 3. 네덜란드 회화 (17세기 - 18세기)
비텔스바흐(Wittelsbach) 가문의 열정 덕분에 이 부분에는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네덜란드 화가들의 훌륭한 그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곳에는 다음과 같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van Rijn): ''십자가에서 내림'', ''성가정''[13]
- 프란스 할스 (Frans Hals): ''빌렘 크로에스의 초상''[13]
- 피터 라스트만 (Pieter Lastman): ''오디세우스와 나우시카아''[13]
- 카렐 파브리티우스 (Carel Fabritius): ''자화상''[13]
- 게라르트 터르보흐 (Gerard Terborch): ''벼룩잡이''[13]
- 야코프 판 레이스다엘 (Jacob van Ruisdael): ''떡갈나무가 있는 급류''[13]
3. 4. 플랑드르 회화 (16세기 - 18세기)
이 컬렉션에는 얀 마뷔세(Jan Mabuse)의 ''다나에'', 피터르 브뢰헬(Pieter Brueghel the Elder)의 ''쾌락의 땅''과 ''그리스도의 설교가 있는 항구 풍경'', 얀 브뢰헬(Jan Brueghel the Elder)의 ''그리스도의 설교가 있는 항구 풍경'',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인동덩굴 정자(Rubens and Isabella Brant in the Honeysuckle Bower)'', ''저주받은 자의 추락(The Fall of the Damned)'', ''위대한 최후의 심판(The Great Last Judgement)'', 반 다이크(van Dyck)의 ''내림(Deposition)'', ''자화상(Self-Portrait)'', ''수산나와 장로들(Susanna and the Elders)'',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의 ''농민들과 함께하는 사티로스(Satyr with Peasants)'' 그리고 아드리아엔 브라우어(Adriaen Brouwer)의 ''마을 이발사 가게(Village Barbar's Shop)'' 등 화가들의 걸작이 포함되어 있다.[13]72점의 루벤스(Rubens) 컬렉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상설 컬렉션이다.[13]
3. 5. 이탈리아 회화 (13세기 - 18세기)
알테 피나코테크의 이탈리아 회화 컬렉션은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작품들을 포괄하며, 미술관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회화는 조토의 ''최후의 만찬''이다. 이 외에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의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프라 안젤리코의 ''그리스도의 매장'',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 도미니크, 미카엘, 세례자 요한, 복음사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 산드로 보티첼리의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 필리포 리피의 ''수태고지'', 로렌초 로토의 ''성 카타리나의 신비로운 결혼'' 등이 있다.라파엘로의 작품으로는 ''카니지아니 성가족'', ''성모 마돈나 델라 텐다'', ''템피 마돈나''가 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정향나무의 성모'',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수태고지''도 소장되어 있다. 티치아노의 ''허영''과 ''카를 5세'', 틴토레토의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파올로 베로네세의 ''두 마리 개와 함께 있는 아모르'', 귀도 레니의 ''성모 승천'', 루카 조르다노의 ''냉소적인 철학자'', 티에폴로의 ''동방박사 경배'',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구이덱카 운하의 레가타'', 카날레토의 ''베니스의 피아체타'' 등도 주요 작품에 포함된다.[13]
3. 6. 프랑스 회화 (16세기 - 18세기)
비텔스바흐 가문과 프랑스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회화는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두 번째로 작은 섹션이다. 전시된 작품으로는 다음이 있다.[13]- 클로드 로랭: ''하갈의 추방''
- 니콜라 푸생: ''미다스와 바쿠스''
- 프랑수아 부셰: ''퐁파두르 부인'', ''누워있는 소녀''
- 니콜라 랑크레: ''새장''
- 장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순무를 닦는 여자''
- 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 ''뉴턴을 사색하는 페랑 양''
- 클로드 조제프 베르네: ''새벽의 동쪽 항구''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개와 함께하는 소녀''
3. 7. 스페인 회화 (16세기 - 18세기)
알테 피나코테크의 스페인 회화는 가장 작은 섹션이지만, 주요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하고 있다.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옷 벗김(1577-1579), 후안 판토하 데 라 크루스의 스페인의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1599),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젊은 스페인 신사(1623-1626), 후세페 데 리베라의 성 바르톨로메오(1634),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시나이 산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매장(1636-1640)와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체스코(1658-1664),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릴로의 포도와 멜론을 먹는 거지 아이들(1645-1646) 등이 전시되어 있다.[13]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은 노이에 피나코테크로 옮겨졌다.작가 | 작품명 | 제작 연도 |
---|---|---|
엘 그레코 | 그리스도의 옷 벗김 | 1577-1579 |
후안 판토하 데 라 크루스 | 스페인의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 | 1599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젊은 스페인 신사 | 1623-1626 |
후세페 데 리베라 | 성 바르톨로메오 | 1634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 시나이 산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매장 | 1636-1640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체스코 | 1658-1664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릴로 | 포도와 멜론을 먹는 거지 아이들 | 1645-1646 |
4. 건축
1826년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는 레오 폰 클렌체에게 비텔스바흐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건물 건설을 명령했다.[2] 알테 피나코테크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었으며, 전시실에 채광창을 설치하여 구조적, 개념적으로도 앞서 있었다.[4] 신르네상스 양식 외관은 19세기 초 일반적인 성과 같은 박물관 건물 유형과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이는 박물관의 기능 및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1836년 개관 이후 독일과 유럽의 박물관 건축의 모범이 되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4], 로마, 브뤼셀, 카셀(Kassel)의 미술관 등 새로운 미술관 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1957년 6월 7일 테오도어 호이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재건되어 다시 문을 열었다.[5] 에른스트 부크너 관장은 재건을 감독하여 건물이 원래 건축 양식을 유지하도록 했다. 전쟁 전 화려했던 내부, 특히 윗층 남쪽 외벽에 있는 큰 로지아는 복원되지 않았다. 2008년 윗층 방들의 벽에는 리옹산 직조 염색 실크로 새로운 벽 장식이 만들어졌다. 녹색과 붉은색의 새로운 색 구성표는 건립 당시부터 20세기까지 주된 디자인을 따른 것이다.
4. 1. 신고전주의 양식과 혁신적인 구조
1826년,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는 비텔스바흐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건물 건설을 레오 폰 클렌체에게 지시했다.[2] 알테 피나코테크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었으며, 전시실 채광창 설치 등 구조 및 개념적으로도 혁신적이었다.[4] 피나코테크의 신르네상스 양식 외관은 19세기 초 일반적인 성과 같은 박물관 건물 유형과 뚜렷이 구별되며, 이는 박물관 건물의 기능 및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당시 매우 현대적이었던 이 건물은 1836년 개관 이후 독일과 유럽의 박물관 건축의 모범이 되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4], 로마, 브뤼셀, 카셀 등의 새로운 미술관 건축 모델이 되었다.
4. 2. 전쟁 피해와 재건
알테 피나코테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5] 재건되어 1957년 6월 7일 테오도어 호이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다시 문을 열었다.[5] 에른스트 부크너 관장은 재건을 감독하여 건물이 원래 건축 양식을 유지하도록 했다. 전쟁 전 화려했던 내부, 특히 윗층 남쪽 외벽에 있는 큰 로지아는 복원되지 않았다. 2008년에는 윗층 방들의 벽에 리옹산 직조 염색 실크로 새로운 벽 장식이 만들어졌다. 녹색과 붉은색의 새로운 색 구성표는 알테 피나코테크 건립 당시부터 20세기까지 주된 디자인을 따른 것이다. 루트비히 1세 국왕과 그의 건축가 레오 폰 클렌체에게 붉은색과 녹색을 번갈아 사용하는 벽 장식은 16세기 후반 유럽 주요 미술관(피렌체, 런던, 마드리드,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빈)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했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4. 3. 현대의 보수 공사
알테 피나코테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재건되어 1957년 6월 7일 테오도어 호이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중에게 다시 문을 열었다.[5] 에른스트 부크너 관장은 재건 프로젝트를 감독하여 건물이 원래 건축 양식을 유지하도록 했다. 전쟁 전 화려했던 내부, 특히 윗층 남쪽 외벽에 있는 큰 로지아는 복원되지 않았다. 2008년 알테 피나코테크 윗층 방들의 벽에는 리옹산 직조 염색 실크로 새로운 벽 장식이 만들어졌다. 녹색과 붉은색의 새로운 색 구성표는 알테 피나코테크 건립 당시부터 20세기까지 주된 디자인을 따른 것이다. 루트비히 1세 국왕과 그의 건축가 레오 폰 클렌체에게 붉은색과 녹색을 번갈아 사용하는 벽 장식은 16세기 후반 유럽 주요 미술관( 피렌체, 런던, 마드리드,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빈)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했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5. 갤러리
참조
[1]
웹사이트
Alte Pinakothek
http://www.pinakothe[...]
2014-08-06
[2]
웹사이트
Alte Pinakothek DIE PINAKOTHEKEN
https://www.pinakoth[...]
2018-05-13
[3]
웹사이트
History DIE PINAKOTHEKEN
https://www.pinakoth[...]
2018-05-13
[4]
웹사이트
Alte Pinakothek
http://www.muenchen.[...]
2018-05-13
[5]
논문
The Reopening of the Alte Pinakothek in Munich
1957
[6]
웹사이트
Natural History and History Painting in Rubens' Animals
http://www.mpiwg-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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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웹사이트
ALTE PINAKOTHEK REVIEW
http://www.fodors.co[...]
Fodor's
2014-07-19
[8]
문서
Alte Pinakothek
[9]
문서
Wood
[10]
서적
Albrecht Dürer: a guide to research
https://books.google[...]
Taylor & Francis
[11]
웹사이트
pinakothek.de – Förderer und Partner
http://www.pinakothe[...]
Pinakothek.de
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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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Alte Pinakothek rejects restitution claim for 'Das Zitronenscheibchen' by Jacob Ochtervelt
http://www.codart.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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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13]
웹사이트
Pinakothek.de – Renovation to Improve Energy Efficiency 2014–2017
http://www.pinakothe[...]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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